영화 '그린북'은 2019년 1월에 개봉했다. '그린북(Green Book)'의 의미는 1933년부터 1966년까지 발행된, 흑인을 위한 여행안내 책자를 말한다. 영화는 1962년도를 배경으로 미국 내 흑인 차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과거의 인종차별 문제를 재조명하며 현재도 계속되는 흑인 차별의 문제에 울림을 주는 영화이다. 실존 인물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와 그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이탈리아 이주민인 '토니 발레롱가'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흑인 피아니스트(고용주)와 백인 운전사(피고용인)라는 관계가 순탄할 리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신뢰와 우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그린북'은 내용도 무겁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의 미국 남부는 백인 고용주와 흑인 피고용인의 관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기였다. 감독은 피터 패럴리,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 박사 역), 비고 모텐슨(토니 발레 롱가 역), 린다 카델리니(돌로레스 역) 등이 출연했다. 중간중간 웃기는 장면들도 있지만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이다. 러닝타임은 130분이다. 집에서 볼 수 있는 OTT는 넷플릭스뿐이어서 이 영화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했다. 12세 관람가이다.
"나의 로드 매니저가 되어 주시오."
1962년 뉴욕 브롱스에 사는 토니 발레롱가는 나이트클럽 경호원으로 일하며 문제가 생기면 항상 주먹이 먼저 나가는 남자이다. 주먹질로 실직하고 구직하는 중,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운전사로 취직하게 된다. 계층과 신분 그리고 취향과 성격마저 정반대인 두 사람은 딥 사우스로 8주간의 콘서트 투어를 위해 긴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여정은 쉽지가 않았다. 인종 분리 정책으로 인종 차별이 심하던 미국 남부의 현실 때문이었다. 영화의 중간쯤 길가에 차가 멈췄고 토니 발레롱가와 돈 셜리가 내린다. 그리고 반대편 농가에 있는 흑인 노동자들이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의 시선에는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많이 어색하고 낯설었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과 돈 셜리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당당하고 기품 있던 셜리의 눈은 흔들린다. 백인을 고용한 흑인을 보고 믿을 수 없어하는 시선에 그는 다시금 불편함을 느낀다.
'인생'이라는 여행길
앞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남부로 향하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의 운전기사 토리 발레롱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당시 흑인들이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위해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습관이 백인이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위치가 뒤바뀐 8주간의 여정을 담은 130분 간의 러닝타임에서 돈 셜리 역을 맡았던 마허샬라 알리의 감정선이 토니에 의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관계이지만 근원적인 피부색으로 인해 처음에는 거북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변화하고 변화된 자신을 받아들인다. 토니는 이전에는 흑인들을 보면 표정을 굳히거나 한 번 쓴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눠 먹으라고 한 음식을 주지 않는 등 사소한 차별들을 행해왔다. 하지만 셜리 박사가 피부색 때문에 갖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그는 예전의 행동들이 얼마나 몰상식했는지를 깨닫게 되고, 또 돈 셜리 덕분에 아내에게 근사한 편지를 쓸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된다. 돈 셜리 또한 토니를 만나고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자신의 감정들을 쏟아낼 골 하나 없어서 혼자 감내하고 자기 방어에만 급급했었다. 하지만 투어를 시작하며 그런 그의 옆에는 다소 막무가내지만 묵묵히 돈 셜리 박사를 지지해 준 토니가 있었고 그는 마침내 누구에게도 내주지 못한 마음을 열게 된다.
인종차별 없는 그린 사회를 꿈꾸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인물의 설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유색 인종의 우위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하던 백인이 평범하지 않은 흑인을 위해 운전기사와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는 것은 기존 인물 관계가 전복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전복된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스토리는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신선했다고나 할까. 백인인 토니가 만나온 흑인들은 셜리 박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토니는 백인이지만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어렵게 책임지는 서민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학식과 돈, 사회적 명망과 지위까지 갖춘 유명한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다. 돈이 필요한 백인인 토니에게 셜리 박사는 흑인일지라도 그에게 돈을 주는 고용인으로서 그를 지켜야만 하는 계약이 존재한다. 콘서트 투어를 떠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들은 일방적인 차별을 당하는 셜리 박사이 현실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접근하는 토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민감한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영화 '그린북'은 자극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는 여화이다. 전체적으로 따뜻했다. 거기에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하는 여러 곡들도 익숙한 게 많아 즐거웠다. 한 번쯤은 이런 주제도 괜찮을 것 같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몰입감 있게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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