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이 지난 5월, 마침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바로 뒤이어 2022년 6월에 개봉한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해일과 탕웨이라는 다소 낯선 배우의 조합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 그 이상의 기대작이 되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고 마침내 넷플릭스를 통해 보게 되었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의 영화다. 개봉 당시부터 톡 프로그램과 무대 인사 등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관람했을 정도로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엉뚱해 보이는 조합이었던 박해일과 탕웨이의 새로운 얼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개인적으로 많은 여운을 준 영화이기에 대략적인 줄거리와 결말 등을 함께 정리해 보았다. 15세 관람가로 러닝타임은 138분이다.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자(유승목 분)의 변사 사건이 발생한다.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경찰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 보이는 감정이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그리고 해준은 사건 당일 서래의 알리바이 탐문과 심문, 잠복 수사 등을 통해 서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서래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사실 해준은 아내(이정현 분)로부터 살인과 폭력이 있어야 기뻐하는 남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사건에 진심인 형사다. 그런 그의 수사망에 포착된 서래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추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 신고할 수도 없었던 사람일 뿐이었다.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삶을 살아온 서래의 곁을 맴도는 해준의 존재는 그녀가 무언가를 바라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헤어질 결심'은 사망자의 아내와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담당 형사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하나의 수사극으로 시작되지만 그보다는 두 남녀가 얽히면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는 흘러간다. 그들의 관계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시작되지만 이번 영화는 기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과는 다른 것 같다. 다소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그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영화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산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 기도수(유승목 분)가 죽은 날, 서래는 매주 월요일에 할머니(정영숙 분)를 보살피러 간다는 사실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해준은 자리를 비운 서래 대신 할머니를 보살피러 갔다가 휴대전화에서 서래가 그날 등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하지만 결국 서래를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덮어버린다.
그로부터 약 1년 남짓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해준은 우연히 이포로 이사 온 서래와 마주하다. 해준에게 재혼했다고 말한 그녀는 남편 임호신(박용우 분)을 소개해 준다. 하지만 해준에게 들려온 소식은 이포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바로 호신,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또다시 남편이 사망하고 미망인이 되어버린 서래에게 해준은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며 그녀가 살인범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수사하게 된다. 하지만 진범은 다른 사람이었다. 해준은 그런 사실에 혼란을 느끼기도 잠시, 서래는 해준에게 이전 사건의 증거 물품인 휴대전화를 건네준다. 그리고 자신은 거리가 꽤 떨어진 바닷가로 가서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들어가 최후를 맞는 선택을 실행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은 해준이 찾지 못하는 미결 사건이 되기로 결심한 서래의 행동, 그리고 그런 서래를 찾기 위해 울부짖는 해준의 처절함으로 마무리된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제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죠?"
개인적으로 이 영화 '헤어질 결심'의 장르적 매력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해준이 의심하는 것처럼 서래 혹은 발생한 사건에 숨겨진 진실이 있을까. 다른 하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상대와의 이별을 위해 헤어질 결심까지 해야만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맺거나 사랑을 말하는 그런 일반적인 보통의 멜로 영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직접적인 표현 하나 없었지만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대로 '헤어질 결심'은 더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두 사람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이별을 말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매혹적인 영화였다. 무엇보다 서래의 마지막 선택이 해준에게는 정말 잔인하고도 잔혹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들만의 사랑 표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 번 더 음미할 수 있는 것 같다. 멜로,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쯤은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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