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개봉했지만 아직 뜨끈뜨끈하다. 가히 2022년 한국 빅 4 영화들 중에 가장 최고라 할 만하다. 배우인 이정재가 감독과 각본까지 맡은 것만으로도 화제성이 충분한데, 거기에 원조 꽃미남 배우인 정우성도 합류했다. 시대는 현재가 아닌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 간첩이었던 '빨갱이'를 잡아들이는 '안기부' 요원들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초보 감독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짜임새도 훌륭하고, 속도감 있는 첩보 액션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예전 '비트'에서의 정우성만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흐른 뒤의 '꽃중년' 정우성을 상상하기가 약간 어려웠는데 이번 '헌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가히 역대급이었던 것 같다. 주연 배우도 이미 훌륭한데, 특별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도 그에 못지않다. 바로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김남길, 조우진, 박성웅, 유재명, 송영창 등이 그들이다. 이 영화가 이정재라는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이웅평 귀순 사건, 5.18 민주화 운동 등을 모티브로 아주 잘 짜여진,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웰메이드 스파이 액션 영화이다.
헌트, 조직 내 침투한 스파이를 색출하라!
'헌트'는 시작부터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오프닝부터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대립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발생한 대통령 암살 사건을 시작으로 북한의 거물급 핵 과학자의 망명 작전까지 실패하자,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안기부 내의 정보를 북으로 넘기는 '동림'이라는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다. 안기부 소속의 해외 파트 차장인 박평호와 군부 출신으로 안기부 소속 국내 파트 차장인 김정도는 상대를 의심하기에 이르고 그 둘은 서로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박평호는 김정도가 깊이 관여를 하고 있는 군수업체 '목성사'를, 김정도는 조총련계 학생이었던 조유정(고윤정 분)을 감금해 고문을 하며 '동림'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과연 이 둘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헌트, 곱씹을수록 우러나는 깊은 맛!
이 영화는 다른 신념을 가진 두 남자가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칠게 충돌하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엔딩까지 다 본 후 복기를 하면, 초반부에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압하던 김정도가 용의자를 가차 없이 죽이는 장면을 시작으로 대통령 암살 계획이 김정도 세력에서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자 김정도는 입막음을 위해 용의자를 사살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거물급 핵 과학자의 망명 작전에 이중 작전 지시로 박평호가 제외되었던 점과 과학자 가족을 구하지 않았던 점, 한국으로 돌아와 빠르게 안기부장을 끌어내렸던 점으로 보아 이미 안기부장에게 박평호는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박평호의 일본 정보원이었지만 결국 박평호를 감시하는 북한 공작원이 죽으면서 곧 누군가 다시 올 거라는 말을 통해 그의 딸 조유정이 박평호의 다음 감시자이자 공작원이라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김정도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이겨낸 것이나 박평호가 취조실에서 조유정에게 입단속을 시킨 점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김정도가 동림이 누구인가에 대한 힌트를 알고 중상을 입은 양 과장의 병실을 옮겼을 때 김정도가 확신을 가지도록 느끼게 하는 복선이 굉장히 임팩트를 주었던 것 같다. 영화 전개 내내 박평호, 김정도 두 인물을 의심하며 유추하는 것이 가장 큰 재미로 동림의 실체 파악이 주목적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두 세력이 엉켜 있다는 점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어쩌면 단순했을지도 모르는 스토리에 짜임새를 넣어 끝까지 집중도를 높였다.
헌트의 수상내역
23회 부산영화평론가 협회상(기술상), 58회 대종상 영화제(조명상), 43회 청룡영화상(신인감독상, 편집상, 촬영 조명상), 42회 한국 영화평론가 협회상(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신인감독상, 영평 10선), 31회 부일영화상(신임감독상)
영화 헌트는 그 당시 좌파와 우파 모두 씹어먹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인간들이었다며, 어느 한쪽도 선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도 더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은 복선이 많이 깔려 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어설프게 드러나지 않았던 전개로 긴장감과 궁금증을 주며 1980년대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였다. 물론 외국어 배우의 한국어 대사가 어눌해서 가끔씩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게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영화에 몰입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한국 현대사의 여러 굵직한 팩트들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 영화지만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은 장면이 상당히 많아 볼만한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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